교황 베네딕토 16세

베네딕토 16세
원어이름 Joseph Aloisius Ratzinger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
추기경 직책 로마 가톨릭교회
대교구 로마 교구
관구 로마 관구
교구 로마 교구
전임자 요한 바오로 2세
후임자 프란치스코
성직
사제서품 1951년 6월 29일
주교서품 1977년 3월 24일
추기경 1977년 6월 27일
개인정보
출생이름 Joseph Aloisius Ratzinger
출생 1927년 04월 16일(1927-04-16) (90세)
바이마르 공화국의 기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주 마르크틀암인
국적 바티칸 시국의 기 바티칸 시국
교파 로마 가톨릭교회
거주지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
부모 요제프 라칭거 / 마리아 라칭거
전직 신앙교리성 장관
학력 트라운스타인의 성 미카엘 신학교
모교 트라운스타인의 성 미카엘 신학교
사목표어 Cooperatores veritatis
(진리의 협력자)
서명
문장

교황 베네딕토 16세( 라틴어: Benedictus PP. XVI, 이탈리아어: Papa Benedetto XVI, 1927년 4월 16일 ~ )는 제265대 교황(재위: 2005년 4월 24일 ~ 2013년 2월 27일)이다. 본명은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 독일어: Joseph Aloisius Ratzinger)이다. 교황으로 선출됐을 당시 그의 나이는 78세로 1730년 교황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동안 선출된 교황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교황이며, 지금의 네덜란드 지방 출신인 교황 하드리아노 6세(1522–1523) 이후 482년 만의 독일인 교황임과 동시에 교회 역사상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이다. 또한,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선택한 교황으로서는 교황 베네딕토 15세 이래 80년 만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극적인 카리스마는 없지만 명석하고 신념이 강한 학자이며 유능한 행정가이자, 일곱 개의 명예박사학위와 모국어인 독일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10개국 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1992년 이래 프랑스의 윤리학 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21세기 최고의 신학자이며 유럽의 최고 지성’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부드러운 음성의 내성적인 사색가이며 모차르트바흐의 곡을 즐겨 연주하는 수준급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베네딕토 16세는 많은 선진국에서 퍼져가는 기독교 신앙의 쇠퇴와 세속화의 풍조를 막으려면 유럽이 먼저 기본적인 기독교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객관적 실재의 상대주의 -그리고 도덕적 진리의 부정- 를 거부하고 21세기 주요 문제로 선언하였다. 그는 가톨릭교회와 인류를 위해 구제를 베푸는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할 것을 가르치며 “사랑의 활동에 참여하는 많은 그리스도인 사이에 증대하는 세속주의와 행동주의에 직면하여,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여야 할 때이다.”라고 다시 확인하였다.

또한, 베네딕토 16세는 전 세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기부하는 자선단체 라칭거 재단의 창설자이자 후원자이다.

2013년 2월 11일,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연령이 너무 많아 업무 처리가 힘들어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또한 사임에 관련한 많은 의혹에 대하여 자신의 확고한 의지임을 분명히 밝혔다. 2013년 2월 27일로 사임하였다. [1] 교황의 중도사퇴는 교황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만의 일이다.

생애

생애 초기 (1927-1951)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

요제프 라칭거는 1927년 4월 16일 성 토요일 아침 8시 30분,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주 마르크틀 암 인에서 요제프 라칭거와 마리아 라칭거의 2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같은 날 그는 유아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경찰관이었으며,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형 게오르크 라칭거사제이자 레겐스부르크 주교좌 성당 소년 성가대의 전(前) 지휘자다. 그의 누나 마리아 라칭거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1991년에 죽을 때까지 집안을 돌보았다. 그들의 종조부는 독일의 정치가 게오르크 라칭거이다.

교황의 일가는 어린 시절부터 그가 성직자의 소질을 타고났다고 증언하였다. 꽃을 뿌리며 뮌헨 대교구장이었던 추기경의 방문을 환영한 아이들 무리에는 다섯 살 무렵의 라칭거도 있었다. 당시 추기경 특유의 의복을 본 후로 그는 추기경이 되고 싶어 했다고 나중에 회고하였다.

나치 전력 논란

1941년 열네 번째 생일을 보낸 그는 곧바로 히틀러 청소년단에 가입했다. 그의 나치 소년단 가입 전력은 뒷날 교황 선출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939년 12월 이후로 나치 독일의 모든 열네 살짜리 사내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단체에 강제적으로 가입해야만 했다. 매우 엄격하고 정직했던 그의 아버지는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였으며, 나치즘의 강력한 반대자였다. 1941년 라칭거의 사촌 가운데 한 명이 다운 증후군에 걸렸는데, 어린 나이였음에도 히틀러 정권의 우생학 운동에 의해 살해당했다. 1943년 열여섯 살의 그는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BMW 공장의 방공포 부대에 복무하였다. 그는 그러나 손가락에 생긴 염증으로 연합군 항공기에 방공포를 발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라칭거는 1944년 4월 독일군탈영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미군에 포로로 잡혀 몇 주 동안 전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가 1945년 6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몇 달 뒤에 석방되었다. 그해 11월에 그는 형 게오르크와 함께 신학교에 들어갔다.

1945년 두 형제는 트라운스타인의 성 미카엘 신학교에 입학해 공부하였다. 두 사람은 1951년 6월 29일 사제로 서품받았다. 라칭거는 1953년과 1957년에 각각 《성 아우구스티노의 교회론에서의 유다 민족과 하느님의 집》이라고 명명된 논문과 성 보나벤투라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덕분에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58년 프라이징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교수 경력 (1951-1977)

라칭거는 1959년 본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의 첫 강의 주제는 “신앙의 하느님과 철학의 하느님”이었다. 1963년 그는 뮌스터 대학교로 옮겨갔는데, 그곳에서 그의 강의는 인기가 높아 강의실이 항상 초만원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라칭거는 쾰른의 요제프 프링즈 추기경의 신학 자문(peritus) 겸 독일어권의 대표자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개혁가였던 그는 공의회 동안 한스 큉과 에드워드 쉴레벡스크 같은 진보적인 근대주의 신학자들과 손을 잡았다. 당대의 유명한 신학자 카를 라너의 팬이었던 라칭거는 교회 개혁의 지지자가 되었다. “그가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공의회가 쇄신의 씨앗을 뿌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공의회에 참석한 라칭거는 회의장 분위기가 현실에 안주 내지는 과거 회귀 쪽으로 기울자 교리ㆍ교의ㆍ전례 분야에서 번뜩이는 논리로 흐름을 바꿔놓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를 ‘공의회 파괴자’라고 몰아붙였다. 당시 신학자들은 문서 초안을 작성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주교들 간의 토론을 준비하는 일을 맡았는데 라칭거는 회기 내내 핵심적 역할을 했다. [2]

1966년 요제프 라칭거는 튀빙겐 대학교의 신학교수로 부임하였는데, 한스 큉도 그곳에서 같이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8년 그는 저서 《그리스도교회 입문서》를 통해 교황은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교회 안의 의견이 다른 목소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교황청의 관료들이 교회를 경직시키고 있다고 서슴없이 비판하였다. 하지만, 1967년과 1968년 독일 대학가를 휩쓴 네오마르크시즘 열풍, 즉 극렬 좌파 학생운동이 일어나면서 진보적 성향이 있는 신학 교수들마저 학생들에게 강의 마이크를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자 라칭거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성경은 대중을 기만하는 비인간적 문헌”, “예수에게 저주를!” 따위의 전단과 구호가 교정에 난무하였다. 결국, 라칭거는 이후로 강경한 보수적 성향으로 돌아섰다. 훗날 그는 회고록에서 “당시 나는 무신론적 열정에 사로잡힌 흉한 얼굴, 심리적 불안, 모든 도덕적 성찰을 부르주아의 썩은 냄새라고 내던져 버리는 열등의식, 이런 것들이 베일을 벗는 장면을 목도했다.”고 말했다. [2]

튀빙겐 대학에 있는 동안 라칭거는 개혁주의 신학 기관지 《Concilium》에 논설을 실었다.

1969년 그는 바이에른의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 돌아왔다. 그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앙리 드 루박, 발터 카스퍼 등과 함께 신학 기관지 《통교》(Communio)를 발간하였다. 《통교》는 오늘날에도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를 포함한 17개국 언어로 출판되고 있는 현대 가톨릭 신학 사상 유명한 기관지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교황으로 선출되기까지 그는 기관지의 다작 공헌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남아 있었다.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장 (1977-1982)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장의 관저인 뮌헨의 홀른슈타인 궁전

1977년 3월 24일 라칭거는 뮌헨프라이징대주교로 임명되어 주교품에 서품되었다. 그의 사목표어는 자서전 《Milestones》의 주석에서 채택한 ‘진리의 협력자’(Cooperatores Veritatis)이다. 6월 27일 추기경회의에서 그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로마교구의 산타 마리아 콘솔라트리체 알 티불티노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이 되었다. 2005년 콘클라베가 열릴 때까지 그는 바오로 6세가 임명한 열네 명의 추기경 가운데 한 명이자 여든 살 미만인 세 명의 추기경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신앙교리성 장관 (1981-2005)

추기경 시절의 문장

1981년 11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라칭거를 과거 검사성성으로 알려져 온 신앙교리성의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그 결과 1982년 초에 그는 뮌헨대주교직을 사임하였다. 1993년 추기경단에서 그는 벨레트리 세그니의 주교급 추기경으로 진급하였으며, 1998년에는 추기경단 차석추기경, 2002년 11월 30일에는 추기경단 수석추기경직을 맡았다. 역대 추기경단 수석추기경은 오스티아의 명의주교였던 점을 고려하여 동시에 오스티아 교구장 직책도 받았다. 그 밖에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장과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장도 도맡았다.

교황청 안에서 라칭거는 예컨대 산아 제한, 동성애, 종교 다원주의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교회의 교리를 다시 확인하고 옹호함으로써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동안에 그는 해방신학마르크스주의와 미움과 폭력을 독려하는 성향에 대해 두 차례 비난하면서(1984년과 1986년) 남아메리카의 노골적인 해방신학자 무리에 반대하는 법안을 제정하는 등 일침을 가했다. 그리하여 많은 해방신학자의 활동이 중지되거나 파문 조치가 내려졌다. 또한, 라칭거와 신앙교리성은 그들 가운데 대다수가 신앙 무차별주의자라고 보았다.

더불어 그는 교회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교황청의 교권주의 등을 비판해 오던 한스 큉을 비롯한 상당수의 진보적인 신학자들에게 수업 및 저서 출판 금지 등의 처벌을 내린 장본인이 바로 라칭거였다. 한 교황청 관리는 “그는 모든 것의 마지막 점검 단계였고, 정통 교리의 최종적인 발언이었으며, 모든 것이 그가 담당하는 신앙교리성을 거쳐 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회가 세계 곳곳에서 세속주의와 다른 종교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만큼 정통 원리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신자들로부터 환영받았다.

2000년 신앙교리성은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이라고 명명된 문헌을 발표했다.

2001년, 이탈리아미국에서 일부 과학자들이 인간 복제 실험을 강행하겠다고 잇달아 공언하며, 인간 복제 실험을 반대하는 교황청을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범죄집단으로 치부한 것에 대해서는 나치 독일의 역사에 견주어 “인간 복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만행과 다름없는 짓”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3]

교황 선출

2011년 사도 궁전에서의 교황 베네딕토 16세

요한 바오로 2세의 건강이 나빠지자 라칭거는 차츰 교황청 대내외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차기 교황의 강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었다. 2005년 4월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에 그는 타임스 잡지의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05년 4월 8일에는 추기경단장으로서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미사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집전하였다. 같은 해 18일에 개시된 콘클라베에서 너무 나이가 많다는 점과 건강이 안 좋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정세가 불안정해 과도기적 관리자가 필요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의 많은 경험과 탁월한 업무 능력, 자유로운 외국어 구사 실력 등이 두드러져 결국 2005년 4월 19일 투표 2일째 되는 날, 라칭거 추기경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78세의 늙은 나이를 고려해 여생을 조용하고 평화스럽게 보내고 싶었던 라칭거는 당시 상황을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들의 투표 추세로 보아 본인이 될 것 같은, 다시 말하면, 마치 나에게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때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고 회고하였다. 또한, 하느님에게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던 그는 “주님께서 당신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신다면 당신은 주님의 뜻을 순종하라는 다른 추기경의 메모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 메모를 계기로 교황직을 수용키로 마음을 정했다고 밝혔다. [4]

교황 선출 당일 그가 군중에게 인사한 후, 연설한 취임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위대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추기경들께서 보잘 것 없고 미천한 저를 주님의 포도밭 일꾼으로 뽑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부족한 도구를 통해서도 일하실 줄 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위안이 됩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저는 여러분께 기도를 부탁합니다. 영원토록 우리의 항구한 도움이 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기쁨 속에서, 그분의 도움이 영원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며, 지극히 사랑받는 어머니 마리아께서 우리 곁에 계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라칭거는 교황으로서의 새 이름을 교황 베네딕토 15세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고 본받고자 베네딕토를 선택하였다. 베네딕토 15세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참전국들 사이에서 교회의 중립을 지키며 열렬하게 평화를 주창한 조정자였으며, 원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가톨릭 교리를 전파한 ‘교의 전략가’로도 유명하다.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는 서구 수도원 제도를 만든 베네딕토회의 창립자이자 유럽수호성인이다. 베네딕토는 라틴어로 ‘좋게 말한’ 또는 ‘축복된’이란 뜻이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25일 일반 알현 중에 가진 연설 중에서 자신이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베네딕토 15세와 영적인 유대를 맺기 위하여 베네딕토 16세라 불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분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의 시기에 교회를 이끄셨던 분이십니다. 용기 있고 진정한 평화의 예언자이셨던 그분은 무엇보다도 대담한 용기로 전쟁의 비극을 막고 전쟁에 따른 불행한 결말들을 줄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그분의 뜻을 이어받아, 저는 사람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저의 사목으로 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평화라는 위대한 선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하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토’라는 이름은 위대한 서방 수도원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걸출한 인물인 누르시아의 베네딕토 성인을 상기시킵니다. 유럽의 수호성인이신 그분은 유럽의 일치를 위한 근본적인 기준점이자 당시 유럽 문화와 문명에 깊이 뿌리내린 기독교적인 근간을 다시 한 번 강하게 환기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이 서양 수도원의 아버지가 자신의 규칙서에서 수사들에게 남긴 권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이외에 어떤 것도 좋아하지 마라.” [5]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직무를 시작하면서, 저는 성 베네딕토에게 우리가 우리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확고히 모시고 살아가도록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부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각과 모든 행위에서 항상 최고의 위치에 자리하시기를! [6]

4월 24일 그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한 즉위식을 통해 정식으로 등극하였으며, 다음해 5월 7일에는 로마 주교의 주교좌 성당인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로마 주교좌 착좌 미사를 거행하여 로마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의 즉위식이 열린 성 베드로 광장과 인근 도로에 모인 순례자들의 수가 35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또한, 약 110개국 대표단이 대거 교황 즉위식에 참가했으며 특별히 교황의 모국인 독일에서도 10만 명의 신도가 참가한 것으로 파악했다. 즉위식이 시작된 시간에 독일 전역의 성당에서는 15분간 축하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즉위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베네딕토 16세

베네딕토 16세의 즉위식은 요한 바오로 2세 때 개정된 전례와 의식, 복장들이 처음으로 선보인 자리였다. 베네딕토 16세는 선출된 후 즉시 이를 승인하였다. 교황 즉위식의 중요한 변화는 우선 장소에서 나타났다. 예식은 성 베드로 대성전의 중앙 제대를 중심으로 추기경들이 원형으로 둘러싼 가운데 교황이 동방 가톨릭교회 총대주교들과 함께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내려가 참배했다. 이어서 무덤에서 걸어나와 온 세계를 향해 교황으로서의 직무를 시작함을 선포했다.

두 번째 변화는 순명을 서약하는 부분이다. 전에는 즉위식에 참석한 모든 추기경들이 순명 서약을 했다. 하지만, 새 즉위식에서는 모든 교회가 새로 선출된 교황을 인정함을 드러내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모든 교회 구성원을 상징하는 12명을 선발하였다. 여기에는 대한민국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추기경 3명 외에 주교, 교구 사제, 부제, 남녀 수도자, 부부, 그리고 최근 견진성사를 받은 젊은 남녀 등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미사에서 가진 강론에서 “나의 진정한 통치는 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며, 내 생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주님의 말씀과 뜻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의 인도를 받아 인류 역사 안에서 그분 자신이 교회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특히 현대 사회를 ‘ 사막’으로 비유하며, “오늘날 세상에는 가난과 굶주림, 자포자기와 소외, 파괴된 사랑, 공허한 영혼, 인간 생명의 존엄성 상실 등 수많은 사막이 존재한다.”라며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을 사막에서 이끌어내 풍성한 생명을 선사하시는 성자께 인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7]

베네딕토 16세는 즉위식을 마친 뒤, 교황 전용차에 탑승해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축복을 내렸다. [8]

건강

베네딕토 16세는 생전에 두 차례 가벼운 뇌졸중을 겪었고 심장병도 앓고 있다고 밝혀졌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이전인 1991년 8월에 첫 뇌졸중을 일으키고 나서 그는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는 건강이 나빠 더는 교황청의 격무를 감당할 수 없다면서 은퇴해 고국에서 책을 쓰고 싶다고 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네딕토 16세의 전기를 쓴 작가인 존 앨런은 그가 1991년 뇌졸중 후유증으로 시력에 문제가 생겼으며 지난 10여 년간 심한 현기증수면장애에 시달려 왔다고 전했다. [9]

2010년 10월 이후 베네딕토 16세는 전례 행렬 때 이동식 장비를 사용했고, 수개월 뒤에는 평상시에 지팡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3년 2월 12일 교황청은 대변인을 통해 처음으로 베네딕토 16세가 수년 전부터 심장박동기를 착용해 왔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베네딕토 16세가 2005년 교황에 선출되기 오래전부터 심장박동기를 착용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몇달 전 비밀리에 배터리를 새로 교체했고 이같은 의료 조치가 일상적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어서 그는 “이는 정상적인 절차였으며 이 일이 교황의 사임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10] 미국심장협회 회장 마리엘 제섭 박사는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심장박동이 느려지는 등 교황의 심장 기능이 약화했을 수 있다. 그 나이대 사람에게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11]

웹사이트 바티칸 인사이더는 2013년 2월 20일 바티칸 문제 전문가 마르코 토사티의의 말을 인용해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이 악화돼 왼쪽 눈이 거의 안 보여 계단을 오르내릴 때 부축을 받아야 하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최근 수년간 외국 여행 중에 수차례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했으며 공식적인 자리에서 피곤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교황 주치의인 파트리치오 폴리스카는 2년 전에 베네딕토 16세의 혈압이 급격하게 올라갔으며 이에 따라 그는 베네딕토 16세에게 가능하면 항공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12]

사임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2월 11일 바티칸에서 열린 추기경회의에서 28일 오후 8시를 기해서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사임 발표문에서 “하느님 앞에서 양심을 성찰하면서 ‘급변하는 세상’,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는데 요구되는 ‘몸과 마음의 힘’이 없다고 확신하고, ‘온전한 자유’로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말했다.

<교황의 사임 발표문 전문 [13]>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저는 세 분의 시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교회 삶에 매우 중대한 결심을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이 추기경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거듭거듭 제 양심을 성찰하고, 저는 고령으로 더 이상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기에 맞갖은 힘이 없다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이 직무는 그 영적인 본질에 따라,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기도와 고통으로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베드로 성인의 배를 이끌고 복음을 선포하려면, 몸과 마음의 힘도 필요합니다. 지난 몇 달 사이에, 저에게 맡겨진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할 정도로 제 자신이 너무 약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행위의 중대성을 잘 의식하고 온전한 자유로, 2005년 4월 19일에 추기경님들의 손으로 저에게 맡겨진 베드로 성인의 후계자인 교황의 직무를 사퇴하며, 이에 따라 2013년 2월 28일 20시부터 로마 주교좌, 성 베드로좌는 공석이 되고, 관할권자들은 새 교황 선출을 위하여 콘클라베를 소집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저의 무거운 직무를 저와 함께 져 주신 여러분의 모든 사랑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제 모든 허물에 대하여 용서를 청합니다. 이제 최고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하느님의 거룩한 교회를 맡겨 드리며, 성모 마리아께서 추기경들이 새 교황을 선출할 때 어머니의 어지심으로 그들을 도와주시도록 간청합니다. 저는 앞으로 기도에 전념하며 하느님의 거룩한 교회를 온 마음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바티칸에서
2013년 2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회법 제332조 2항은 ‘혹시라도 교황이 그의 임무를 사퇴하려면 유효 요건으로서 그 사퇴가 자유로이 이루어지고 올바로 표시되어야 하지만 아무한테서도 수리될 필요는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상 교황직은 종신직이라서 생존하는 교황이 직무에서 물러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는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가 사임한 이후 598년 만의 일로, 폰시아노베네딕토 9세, 첼레스티노 5세 그리고 그레고리오 12세에 이어 역사상 다섯 번째로 사임한 교황이 된다. 하지만 이전에 사임한 교황들 중 베네딕토 9세를 제외하면 사실상 외부 요인에 의한 사임이었던 데 비해 베네딕토 16세는 온전히 자발적으로 사임했다. [14] [15] 베네딕토 16세는 앞서 2010년 자신의 저서 《세상의 빛: 교황, 교회, 그리고 시대의 징후》에서 자진 사임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교황은 책에서 “(교황에게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더는 교황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느낄 경우 사임할 권리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무이기도 하다”면서 “교황의 의무와 잦은 외국 출장에 자주 부담을 느끼곤 한다. 때로는 육체적인 면에서 내가 일(교황 업무)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고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베네딕토 16세는 사임 발표 후 1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삼종기도 자리에서 5만여 명의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자신의 사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면서, ‘교회에 있어 특별한 이 시기’에 신자들이 끊임없이 기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들이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시작 일시를 앞당기는 것을 허용하는 자의교서를 2월 25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콘클라베는 교황의 선종이나 사임으로 사도좌가 공석이 된 지 15~20일 사이에 개시되는데, 모든 선거인 추기경이 도착하면 선거 개시를 앞당기는 것도 허용되었다. 하지만 추기경들은 교황 퇴위 이전에 콘클라베 일정을 결정할 수는 없다.

교황은 또 교서에서 추기경이 아닌 사람이 콘클라베 과정에 대해 완전한 비밀을 유지해야 할 서약을 깨뜨리면 자동 파문의 벌을 받는다고 규정했다. 추기경일 경우에는 이전 규정과 마찬가지로 후임 교황이 징계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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